하느님은 실재하십니다. 하느님은 순수한 생명이자 사랑이십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느님의 존재를 보고 듣지도 못하며 느끼지도 못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하느님의 존재를 알 수 있습니다. 내 개체적 욕심을 철저히 없애고 철저히 가난한 마음의 소유자가 되면 그 때 우리는 하느님의 존재를 알 수가 있습니다.
하느님의 존재를 아는 순간 모든 만물이 하느님과 닮아 있음을 알게 되고 모든 만물이 곧 하느님이 역사하심의 증거물이 되지요. 먼지 하나, 풀 한 포기부터 저 밝게 빛나는 태양까지 모두 하느님의 증거지요. 우리는 하느님을 알 수 있는 존재로 태어났기에 너무나 큰 행운이고 행복입니다. 인간으로 태어났음에 진정 하느님께 감사드립니다.
하느님은 무소부재하시고 전지전능하시기 때문에 항상 우리 곁에서 도와주고 계십니다. 인간의 욕심과 마음에 진 무거운 짐(죄,원죄)에 가리워져 하느님의 존재를 알 수가 없는 것이지요. 인간의 욕심은 밑도 끝도 없어 마음에 진 짐은 더욱 무거워져 갑니다. 하느님과는 점점 멀어져갑니다.
하느님의 기준에는 선악이 없습니다. 다만 인간의 기준에 선과 악이 있을 뿐이지요. 하느님은 순수한 긍정의 사랑이시기에 우리가 선택한 일에 대해 항상 도와주고 계십니다. 우리가 선(善)함을 택하면 선함을 키워주시고 악(惡)함을 택하면 악함이 커지게 됩니다. 자라나는 새싹을 가만히 나두면 잘 자라지만 새싹 위에 조그만 돌덩이라도 올려져 있다면 그 새싹은 죽거나 비뚤어져 자랄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느님은 우리를 사랑으로 자라게 하십니다. 돌덩이를 올려놓을지 말지는 우리의 선택이지요. 내가 악함을 택하면 그 순간 그 장소가 이미 지옥이고 내가 선함을 택하면 그 순간 그 장소는 이미 천국이지요.
언젠가 택시를 탔습니다. 택시 안에 성모마리아 상이 있었습니다. 기사 아저씨가 성당에 다니시는 것 같아 “성당에 다니시는 군요?”라고 여쭤 봤습니다. 말씀을 나누다 보니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택시 아저씨가 이런 말씀을 하시더군요. “신앙은 신비체험이기 때문에 믿음이 때때로 흔들린다”고 하시더군요. 충분히 이해가 되는 말씀입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철저하게 자기 자신의 에고(Ego)를 죽이면(희생) 하느님의 존재를 알 수가 있지요. 믿음이라는 것은 불확신에 근거합니다. 믿음의 흔들림은 자기 자신의 욕심에 대한 그림자의 일렁임입니다. 모든 욕심과 마음의 짐을 버리는 순간 믿음을 넘어 하느님을 영접하시게 될 것입니다. 하느님을 영접하게 되면 이제 믿음은 필요가 없습니다. 너무나 당연하기 때문입니다.
모든 집착과 욕심을 버리십시오.
철저하게 마음이 가난한자가 되십시오.
하느님께 귀의하고 모든 것을 맡기십시오.
그때 하느님이 항상 우리와 함께 하심을 스스로 알며
우리 안에서 사랑과 평화와 기쁨이 샘솟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