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 꿈을 갖으세요.
학교는 지식을 전달하는 곳만은 아니며 친구들과 서로 경쟁하기 위해 같이 학교를 다니는 것도 아닙니다. (친구들과 경쟁만 한다는 말은 아닙니다.) 학교에서 공부를 하는 것은 꿈을 이루기 위해, 즉 행복을 추고하고자 노력하는 과정의 단계라고 생각합니다. ‘공부 工夫’ 중국어 발음으로 ‘쿵푸’라고 하는 이 단어의 뜻은 지식 공부만을, 무술 만을 뜻하는 단어가 아닙니다. 모든 것에 걸쳐서 노력할 때, 그때 공부가 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공부’는 평생에 걸쳐 학습해 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해 봅니다.
왜 공부이야기를 했을까요?
여러분이나 저나 그리고 모든 사람들은 학생이기 때문입니다. 학생은 공부를 해야 하고 그 안에 행복을 찾는 열쇠가 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공자는 ‘아침에 도를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라고 말했습니다. 무슨 뜻일까요? 그것은 바로 ‘인식의 변화’를 말하는 것일 겁니다. 모든 것은 변합니다.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면 ‘모든 것은 변한다’는 진리이겠지요. “나는 변하지 않아.” 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고 실제로 변하지 않았다면 그 사람은 변하지 않기 위해 꾸준히 변해온 사람일 겁니다.
예를 하나 들어 보겠습니다.
어느 날 병원에 갔더니 앞으로 3개월 밖에 살지 못한다는 시한부 인생 선고를 받았다고 합시다.(사실 누구나 시한부 인생을 살지만 언제 죽는지 모른다는 것이 장단점이 될 수 있겠죠.) 병원에 가기 전에 보았던 벚꽃과 선고를 받은 후의 벚꽃이 같아 보일까요? 아마도 아니겠지요. 햇빛에 찬란히 빛나는 아름다움과 화사한 봄바람에 살랑이는 모양을 보고 이전에 보지 못한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또한 선고를 받은 후의 대인관계에서도 이전에 보지 못한 느낌을 받을 것입니다. 무엇이 바뀐 것일까요? 세상이 갑자기 바뀌었을까요? 바뀐 것은 내 인식이 바뀐 것입니다. 즉 공자님의 말씀, ‘아침에 도를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는 뜻은 결국 깨달음(인식의 변화)으로 인해 ‘이전의 나는 죽고 새로운 내가 태어났다’는 뜻이라고 생각해 봅니다. 우리가 ‘공부를 한다’는 것은 이런 인식의 변화를 추구해야 하지 않을까요? 움베르트 마투라나는 그래서 ‘무릇 앎이란 함이며, 함이란 앎이다’ 라고 말한 것일 겁니다. 인식의 차이에 따라 생각도 바뀌고 행동도 바뀔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아는 만큼 보고 느끼고 행동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공부를 한다’는 것은 결국 행동으로 옮겨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지행일치知行一致)
행복에 대해서 생각해 보겠습니다. 행복이라는 것은 누구나 추구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행복에도 등급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행복에 등급이 있다고 말하면, 개인의 가치관과 주관이 다른데 ‘어찌 등급이 있을 수 있냐’고 반문하는 분들이 분명 있을 겁니다. 맞는 말입니다. 하지만 그래도 전 행복에는 등급이 있다고 믿습니다. 이것은 저의 주관적인 가치판단이라고 말하겠습니다. 예를 들어 돈, 명예 또는 권력 등 물질적인 것, 권위 등에 기반한 행복이 있을 수 있습니다. 뭔가 주어져 있을 때 그 때 행복하다고 말하는 것입니다.(돈, 명예 등이 중요하지 않다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변하지 않는 것이 없고 영원하지 않는 것이 없다는 것은 진리일진데, 어찌 주어진 것들이 영원하겠습니까? 그런 행복은 쉽게 깨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진정한 행복은 주어진 것들이 변하더라도 그에 따른 내 의식의 충만감을 만족시킬 줄 아는 삶의 방법인 것 같습니다. 인도의 한 수행자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당신은 불행한가? 이미 불행한데 돈이 무슨 필요가 있겠는가! 당신은 행복한가? 이미 행복한데 돈이 무슨 필요가 있겠는가!”
즉, 공부를 한다는 것은 파랑새는 우리들 마음속에 있다는 것을 깨달아 가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공부는 꿈을 이루기 위해 나와의 경쟁인 것입니다. 그러기에 꿈을 갖아야 합니다. 갈매기 조나단이 꿈이 없었다면, 조나단은 시공을 초월하는 대신에 어선 주위나 맴돌다가 먹이나 다투는 나날을 보냈었겠지요.
세상의 흐름이 최소비용으로 최대효과라는 경제적인 원리로만 움직인다면 행복의 의미를 찾기 어려울 것입니다. 우리는 아니라고 말하고 싶지만, 되돌아보면 너무나 물질주의에 빠져 있습니다. 이성으로는 알아도 몸으로는 움직이지 않는 것입니다. 때로는 바보같아도 최대비용으로 최소한의 만족을 얻을 줄 아는 그런 여유가 행복일 것 같다는 생각도 해봅니다. 예를 들어 사랑이 최소비용으로 최대효과를 내는 것인가요? 문학이라는 것이 최소비용으로 최대의 만족일까요? 글 쓰는 사람을 생각해 보면 분명 아닐 것입니다. 고뇌와 고뇌 속에 최소한의 만족을 얻을 것입니다. 행복이라는 것은 젊음에 있다고도 생각해 봅니다. 젊음이란 계란을 바위에 던지면 깨질 줄 알면서도 시도해 보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깨질 줄 알면서도 행하는 여유가 있는데 어찌 행복하지 않겠습니까? 또한 피천득 선생님은 늙어 간다는 것은 ‘젊은 시절의 마음을 잊어 버리는’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여러분의 꿈을 꼭 간직하세요.^^
결국 말하고 싶은 것은 우리는 행복을 추구하지만 행복이라는 것은 인식의 문제라는 것입니다. 인식의 변화가 세상을 바꾸니까요! 그러기에 ‘공부를 해야 하는 궁극적인 이유가 인식의 변화에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 공부를 열심히 하기 위해선 책을 읽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혹시 ‘문사철 600’ 이라는 말을 들어 본 적이 있나요? 이 말은 문학서적 200권 역사서적 200권 철학서적 200권은 읽어야 한다는 말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요즘에는 ’문사철과 700‘ 이라고 합니다. 전문 과학서적도 열심히 읽어야 한다는 말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제가 아는 분께서는 2000권 이상은 읽어야 한다고 말씀하시더군요. (저는 아직 제대로 된 책을 100권도 못 읽었습니다. 노력중..^^;)
저는 여러분보다는 늦게 책을 읽기 시작했지만(늦게나마 다행이지요) 여러분은 지금부터 일찍 시작하게 된다면 어느날 훌륭한 사람이 되어(여러분의 꿈을 이룬)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여러분과 같이 감수성이 풍부한 나이에는 문학서적도 잘 어울린다고 생각합니다. 착하고 예쁜 여러분을 만나게 되어 영광스럽고, 행복합니다. :)
마지막으로 여러분 애인 있나요? 전 다음과 같이 있습니다. ^^
愛人者 人恒愛之 (타인을 사랑하는 사람은 타인이 항상 그를 사랑한다.)
敬人者 人恒敬之 (타인을 공경하는 사람은 타인이 항상 그를 공경한다.)
위의 두 문장이 맞는 이유는 아래 문장처럼 느낄 수 있기 때문일 겁니다.)
Love is like wind, though you can't see it but feel it.
여러분 행복하세요. :)
학교는 지식을 전달하는 곳만은 아니며 친구들과 서로 경쟁하기 위해 같이 학교를 다니는 것도 아닙니다. (친구들과 경쟁만 한다는 말은 아닙니다.) 학교에서 공부를 하는 것은 꿈을 이루기 위해, 즉 행복을 추고하고자 노력하는 과정의 단계라고 생각합니다. ‘공부 工夫’ 중국어 발음으로 ‘쿵푸’라고 하는 이 단어의 뜻은 지식 공부만을, 무술 만을 뜻하는 단어가 아닙니다. 모든 것에 걸쳐서 노력할 때, 그때 공부가 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공부’는 평생에 걸쳐 학습해 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해 봅니다.
왜 공부이야기를 했을까요?
여러분이나 저나 그리고 모든 사람들은 학생이기 때문입니다. 학생은 공부를 해야 하고 그 안에 행복을 찾는 열쇠가 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공자는 ‘아침에 도를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라고 말했습니다. 무슨 뜻일까요? 그것은 바로 ‘인식의 변화’를 말하는 것일 겁니다. 모든 것은 변합니다.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면 ‘모든 것은 변한다’는 진리이겠지요. “나는 변하지 않아.” 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고 실제로 변하지 않았다면 그 사람은 변하지 않기 위해 꾸준히 변해온 사람일 겁니다.
예를 하나 들어 보겠습니다.
어느 날 병원에 갔더니 앞으로 3개월 밖에 살지 못한다는 시한부 인생 선고를 받았다고 합시다.(사실 누구나 시한부 인생을 살지만 언제 죽는지 모른다는 것이 장단점이 될 수 있겠죠.) 병원에 가기 전에 보았던 벚꽃과 선고를 받은 후의 벚꽃이 같아 보일까요? 아마도 아니겠지요. 햇빛에 찬란히 빛나는 아름다움과 화사한 봄바람에 살랑이는 모양을 보고 이전에 보지 못한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또한 선고를 받은 후의 대인관계에서도 이전에 보지 못한 느낌을 받을 것입니다. 무엇이 바뀐 것일까요? 세상이 갑자기 바뀌었을까요? 바뀐 것은 내 인식이 바뀐 것입니다. 즉 공자님의 말씀, ‘아침에 도를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는 뜻은 결국 깨달음(인식의 변화)으로 인해 ‘이전의 나는 죽고 새로운 내가 태어났다’는 뜻이라고 생각해 봅니다. 우리가 ‘공부를 한다’는 것은 이런 인식의 변화를 추구해야 하지 않을까요? 움베르트 마투라나는 그래서 ‘무릇 앎이란 함이며, 함이란 앎이다’ 라고 말한 것일 겁니다. 인식의 차이에 따라 생각도 바뀌고 행동도 바뀔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아는 만큼 보고 느끼고 행동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공부를 한다’는 것은 결국 행동으로 옮겨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지행일치知行一致)
행복에 대해서 생각해 보겠습니다. 행복이라는 것은 누구나 추구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행복에도 등급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행복에 등급이 있다고 말하면, 개인의 가치관과 주관이 다른데 ‘어찌 등급이 있을 수 있냐’고 반문하는 분들이 분명 있을 겁니다. 맞는 말입니다. 하지만 그래도 전 행복에는 등급이 있다고 믿습니다. 이것은 저의 주관적인 가치판단이라고 말하겠습니다. 예를 들어 돈, 명예 또는 권력 등 물질적인 것, 권위 등에 기반한 행복이 있을 수 있습니다. 뭔가 주어져 있을 때 그 때 행복하다고 말하는 것입니다.(돈, 명예 등이 중요하지 않다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변하지 않는 것이 없고 영원하지 않는 것이 없다는 것은 진리일진데, 어찌 주어진 것들이 영원하겠습니까? 그런 행복은 쉽게 깨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진정한 행복은 주어진 것들이 변하더라도 그에 따른 내 의식의 충만감을 만족시킬 줄 아는 삶의 방법인 것 같습니다. 인도의 한 수행자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당신은 불행한가? 이미 불행한데 돈이 무슨 필요가 있겠는가! 당신은 행복한가? 이미 행복한데 돈이 무슨 필요가 있겠는가!”
즉, 공부를 한다는 것은 파랑새는 우리들 마음속에 있다는 것을 깨달아 가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공부는 꿈을 이루기 위해 나와의 경쟁인 것입니다. 그러기에 꿈을 갖아야 합니다. 갈매기 조나단이 꿈이 없었다면, 조나단은 시공을 초월하는 대신에 어선 주위나 맴돌다가 먹이나 다투는 나날을 보냈었겠지요.
세상의 흐름이 최소비용으로 최대효과라는 경제적인 원리로만 움직인다면 행복의 의미를 찾기 어려울 것입니다. 우리는 아니라고 말하고 싶지만, 되돌아보면 너무나 물질주의에 빠져 있습니다. 이성으로는 알아도 몸으로는 움직이지 않는 것입니다. 때로는 바보같아도 최대비용으로 최소한의 만족을 얻을 줄 아는 그런 여유가 행복일 것 같다는 생각도 해봅니다. 예를 들어 사랑이 최소비용으로 최대효과를 내는 것인가요? 문학이라는 것이 최소비용으로 최대의 만족일까요? 글 쓰는 사람을 생각해 보면 분명 아닐 것입니다. 고뇌와 고뇌 속에 최소한의 만족을 얻을 것입니다. 행복이라는 것은 젊음에 있다고도 생각해 봅니다. 젊음이란 계란을 바위에 던지면 깨질 줄 알면서도 시도해 보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깨질 줄 알면서도 행하는 여유가 있는데 어찌 행복하지 않겠습니까? 또한 피천득 선생님은 늙어 간다는 것은 ‘젊은 시절의 마음을 잊어 버리는’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여러분의 꿈을 꼭 간직하세요.^^
결국 말하고 싶은 것은 우리는 행복을 추구하지만 행복이라는 것은 인식의 문제라는 것입니다. 인식의 변화가 세상을 바꾸니까요! 그러기에 ‘공부를 해야 하는 궁극적인 이유가 인식의 변화에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 공부를 열심히 하기 위해선 책을 읽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혹시 ‘문사철 600’ 이라는 말을 들어 본 적이 있나요? 이 말은 문학서적 200권 역사서적 200권 철학서적 200권은 읽어야 한다는 말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요즘에는 ’문사철과 700‘ 이라고 합니다. 전문 과학서적도 열심히 읽어야 한다는 말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제가 아는 분께서는 2000권 이상은 읽어야 한다고 말씀하시더군요. (저는 아직 제대로 된 책을 100권도 못 읽었습니다. 노력중..^^;)
저는 여러분보다는 늦게 책을 읽기 시작했지만(늦게나마 다행이지요) 여러분은 지금부터 일찍 시작하게 된다면 어느날 훌륭한 사람이 되어(여러분의 꿈을 이룬)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여러분과 같이 감수성이 풍부한 나이에는 문학서적도 잘 어울린다고 생각합니다. 착하고 예쁜 여러분을 만나게 되어 영광스럽고, 행복합니다. :)
마지막으로 여러분 애인 있나요? 전 다음과 같이 있습니다. ^^
愛人者 人恒愛之 (타인을 사랑하는 사람은 타인이 항상 그를 사랑한다.)
敬人者 人恒敬之 (타인을 공경하는 사람은 타인이 항상 그를 공경한다.)
위의 두 문장이 맞는 이유는 아래 문장처럼 느낄 수 있기 때문일 겁니다.)
Love is like wind, though you can't see it but feel it.
여러분 행복하세요. :)
- 2006. 5. 25 소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