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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8.11.07 쫄지마 기천! - 윤동완 원장

쫄지마 기천! - 윤동완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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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ttp://dangchan.org




쫄지마 기천…….예무원장 윤동환(보령 천룡수련원)


Ⅰ. 시작하는 글


푸른 것과 같고 아득한 것과 같으며, 보이지도 아니하고 잡히지도 않으면서 무게도 형체도 없는 것을 이름하여 기천이라 하노라!

~ 중 략 ~

만화의 꽃밭에 노닐면 꽃향기 몸에 배일 것이며, 물속에 노닐면 몸 또한 젓을 것이라. 그린 그림 속에 높고 낮음이 있어 보이기는 하여도 잡을 수 없듯이 진법이란 이와 같아 아지랑이와 같고 꿈과 같나니라. 허공의 꽃 어찌 냄새를 맡을 수 있으며, 꿈속의 나비 어찌 실로 감정이 있으랴. 반석은 바람에 흔들리지 않는 것과 같이 용기 있고 씩씩하게 이 법을 수행하면 마땅히 괴로움을 다할 수 있느니라. 못난 사람 나를 보고 한 바탕 비웃겠지만, 뒷사람 그를 보고 또 한 번 웃을 테지.

~ 기천 도학류


아득할 손! 기천 새내기 시절, 봄, 여름, 가을, 겨울 몇 번의 사계를 계룡에서 보내며, 도학류를 외고 또 외웠다. 기천명도 그렇고 초심자에게 드리는 글도 외웠다. 그 구결들과 갑사의 수련 터를 달궜다. 열정이라는 두 글자가 그 시절의 키워드이다.


“칼 찬 선비”가 이상으로 그린 내 모습이었다. 20대에 무예의 길에 들어섰고, 구절양장(九折羊腸)의 길을 달려 왔다. 갈 길은 멀고 호랑이를 겨냥한 그림이 고양이를 그리고 있는지 걱정이다. 어차피 칼과 창으로 마음을 밝히고 세상 근심을 잊으려는 노력은 반도이폐(半途而廢) 거꾸러져 풀 위에 누워야지 끝나는 것 아니런가. 풀을 헤치고 나뭇가지에 긁히면서 산길을 더듬었다. 불같은 사랑도 있었고, 얼음처럼 냉담한 회의도 없었다면 거짓이다. 조금 보태 20년이다. 내 청춘의 대부분이 아니 모두라고 할 정도의 세월을 기천에서 견딘 것이다. 그런데 작금 모두가 기천이 위기라고 한다. 우리가 전통무예시대의 마지막세대라는 어설픈 자조론이 있는가하면, 조금만 지나면 기천의 가치를 알아줄 시대가 오고, 고생이 끝나고 살기 좋은 시절이 와서 대우받으며 기천을 알리는 때가 올 것이라는 희망가도 있다


아! 나는 기천의 한 줌 자부심을 위해 이 글을 쓴다. 도저한 산업화와 신자유주의의 파고 속에서 일엽의 편주로 고난한 항해를 지속한 선배 기천문인에 대한 헌사이자 진실로 돈도 안되는 이 일에 동참할 후배 문인들을 위한 자긍의 기록이고자 한다. 그 과정 속에서 전통이란 무엇이고, 기천은 어떻게 전통성을 획득해야 하는가? 에 대한 방법을 고민하고, 조선 무예의 원형을 간직 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해동검도와 수벽치기의 탄생에 상당한 영향을 끼친 무(武)로서의 기천을 살펴보고자 한다.


그 동안 기천의 안과 밖에서 보고 듣고 경험한 토대 위에서 작업한 것이므로 주관적일 수밖에 없고, 편향적 일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수준이 낮은 눈 먼 자의 더듬거림에 불과 할 것이기에 객관성을 잣대로 한 핍박은 각오한 바다.


Ⅱ. 기천 이야기 속으로


1.부활(?)하는 전통


전통무예계 사람들 사이에서 하는 말이 있다. “기천은 근근히 지탱 하면서 도대체 자존심이 왜 그리 쎄” 보통은 먹고 사는데 문제가 없는 종목에 종사 하는 사람들의 말이다. 그렇다. 생존을 위협하는 자본주의의 세찬 바람을 견디게 하는 고집스런 기천은 전통무예의 진정한 한 맥이며, 나는 그 전위를 담당 한다는 자부심이다. 지금도 그렇지만 나는 기천의 수련복이 자랑스러웠다. 견뎌서 이어나가는 자의 증표가 아닌가? 그래서 수련을 하지 않는 사람이 멋으로 수련복을 사서 입으려 구입을 부탁 하면 거절 했다.


그러면 전통 이란 무엇이고, 어떠할 때 그 계승과 확대를 꾀 하게 되는가? 개인에게 그가 살아온 이력과 기억이 있듯이 집단 속에서도 나름의 기억과 이력이 있다. 집단의 이력을 역사, 집단의 기억을 전통 이라 부른다. 즉 전통은 기억이기에 붙들면 보존 되고 놓으면 사라진다.


우리의 근세사는 단절 되었다. 대일항쟁기의 폭압과 해방, 분단, 전쟁을 거치면서 우리는 전해 내려온 전통의 허와 실을 차분히 살필 만한 여유를 갖지 못했다. 망국의 치욕 속에서 전통은 부정 되어야할 대상 이었고, 해방 이후의 좌우대립과 내전의 폐허 속에서 전통은 기억 속에서 희미해 졌다. 박정희 군사정권의 조국 근대화의 깃발 아래 추진된 정책은 실용적 경제적 노선의 추구라는 면에서 압축성장의 열매를 수확 했으나, 전통의 계승과 발전의 측면 에서는 더욱 직접적 위협이 될 수밖에 없었다. 명리학은 미신으로 터부시 되었고, 풍수지리학은 묏자리나 봐주는 것으로 하시 되었으며, 전통무예는 약 장수의 흥행을 돕는 차력으로 뭉뚱그려졌다.


굳이 Maslow의 욕구의 단계론에 의거 하지 않아도 우리의 욕구와 관심에는 순서가 있고 위계가 있다. 우선 하는 것은 생존에 대한 안전의 욕구 이고, 문화이니 자아실현이니 하는 것은 그 다음의 문제다. 광에서 인심 난다고 했다. 생존의 안정성을 담보 하는 근대화의 성공으로 우리는 비로소 우리의 문화적 자아와 정체성을 돌아보는 여유를 갖게 되었다. 더불어 근대화 성공의 자신감은 민족의식의 고양과 함께 전통문화에 대한 적극적 평가를 가능케 했다. 나는 그 시기의 정점이 1988년 올림픽 이후 97년 IMF 이전 까지라 본다. 그렇지 않고야 그 시기 불꽃처럼 타오른 국학의 열풍과 전통무예의 발흥을 어떻게 설명 하겠는가?


결론적으로 전통문화가 재고되고 적극적으로 평가 된 것은 경제적 성장과 정치적 안정을 기반으로 한 근대화의 선물 이며, 기천 또한 고양된 민족의식과 자긍심으로 무장된 청년 지식인과 대학생을 중심으로 대중화의 깃발을 올리게 된다.


2. 쫄지마 기천!


2014년 대한민국에서 역사적 기록과 전승의 계보가 명확한 유무형의 문화재가 얼마나 되겠는가? 과문한 탓인지 모르지만 중요무형문화재 76호인 택견을 제외 하고는 그전승의 맥이 기록으로 남은 경우가 거의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 과단해서 말한다면 기천과 오십보 백보 아니겠는가? 우리 민족의 정서와 삶의 풍속이 그 기예에 배어 있다면 전통 예술이니, 전통 무예니 하는 주장이 받아들여지고 있는 현실 이다. 물론 정부 차원의 경우는 정밀한 고증 작업과 엄격한 심사가 있겠지만….


세상엔 그렇지 않은 케이스도 있으니, 누란의 위기에 민족을 구한 호국무예로 멀리는 신라 화랑도에서 그 시원을 강조 하는 국기(國技)태권도가 실은 made in japan 인 카라테가 해방조국에서 이름만 바꾼 것임은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공개된 비밀 아닌가. 이렇게 정부의 비호 혹은 묵인 아래 없는 역사가 만들어 지고 무의식적 인정이 강요된 경우도 있는데 확실한 정서적 토대와 몸 사위의 민족적 특질을 기반으로 전통문화의 한 맥임을 주장 하는 게 그리 큰 잘못은 아니지 않는가. 나의 주장은 폭풍우 몰아치는 대양의 한 가운데와 같았던 우리의 근세사 속에서, 말살의 파고를 견뎌내며 전통의 가닥들을 지키고 키워온 분들의 영웅적 고집을 폄하 하고자 하는 것 은 절대 아니다. 오히려 기록과 증거의 부실함을 메우고도 넘치는, 부정할 수 없는 민족의 생활과 풍습, 가락과 몸짓에 전통의 역사성을 기대어 전통창조의 시원이 되자는 역설 이다.


기천도 마찬 가지로 말 하면 웃음만 사는 연개소문 설화나, 천선녀 설화 등에 기대어 역사성을 강조 하여 전통성을 확보 하려는 어설픈 짓(?)을 하지 말자는 것이다. 이 세상에 그 자체로 온전히 새로운 것 은 없다. 모든 존재는 유형이든, 무형이든 서로에게 빚지고 있다.


부처는 자신의 깨달음조차 처음이 아니라 했다. 진리조차 이러할 진대 이외의 것이야 일러무삼 하리오. “길은 늘 옛 길 이다.” 중국 우슈 특히 당랑권과의 유사성 논란에 휘말리곤 하는 기천은 조금 더 당당해 질 필요가 있다. 두 나라 특히 북중국 과 백두산 일대의 북조선은 매우 인접한 지역으로 무술가들의 상호 교류와 영향은 유추하기 쉬운 일이다. 간단한 일화를 전한다. 신원사에서 수련하던 2000년대 초반, CIA 쪽 일을 한다고 알려진 한 문인이 중국을 다녀와서 문주님을 독대 했다.


문인: 중국에서 비전하는 수련법을 보았습니다.

문주님: 그래 그 동작이 어떻던고?

문인: 역근 이었습니다.

문주님: 그럴 것 이다.


전통의 역사성을 증명 하라는 요구에 대해서 기천은 나꼼수 스타일대로 말한다면 “쫄면 안된다” 당당해 져야 한다. 당금 조선의 무림에서 우리의 풍물과 소리에 꺽어지고 풀어지며 유려한 몸짓으로 화답 할 자 누구 인가?


다시 한 번 말하자면 전통은 기억 이라 붙들면 보존 되지만 놓으면 사라진다. 즉 끊임없이 당대의 구성원들에게 가치로써 어필 되어야 하며, 소통 되고 소비되야 하는 것 이다. 전통과 역사성은 시간이 지난다고 누가 주거나 저절로 인정 되어지는 것이 아니며 소통 되고 소비 되어 지는 과정 속에서 획득 되는 것 이다.


3. 창검 으로 가는 문(文)의 길, 무(武)


“칼을 찬 선비” 는 나의 이상형 인간 이다. 무슨 계기가 있어서가 아니었다. 무릇 대장부란 문과 무를 겸비해야 한다고 생각 했다. 남명 조식은 칼을 찬 문인이고, 충무공은 서책을 읽는 무인이라 할 만 하다. 술에 취해 달을 희롱한 이백도 빼놓을 수 없겠다.


무는 창검으로 인의예지의 길로 나아가는 것이다. 창검으로 방편을 삼되 본질은 창검을 넘어선 곳을 지향하는 것이다. 여기 이 지점에서 무는 술(術)을 넘어 도(道)와 예(藝)로 비로소 자리 한다. 무(武)란 글자는 창검으로 문(文)의 길을 지향 하는 무(武)의 모순을 소리 없이 웅변 하고 있다.


예로부터 동양 삼국 공히 권법만으로는 무(武)라는 글자를 허락하지 않았다. 박하게 말 한다면 병장무예가 없는 문파는 제대로 된 문파라 할 수 없다. 옛적 무인들이 애용하는 병장기 없이 냉혹한 무림에 출사 했다는 생각은 순진 하다.


기천은 전통무예에 종사 하는 사람들로부터 그 격이 다르다는 말을 가끔 듣는다. 남다른 자부심으로 세상을 사는 사람들 이라, 다른 문파를 인정하는 발언을 듣기 어려운 점을 감안 하면 놀라운 일이다. 우선 단배공의 장중함에 찬사가 붙여지고, 육합은 기본 공력 기르는 공부가 부실한 문파의 수련생들 에게는 기천 입문의 발심을 내는 치명적 유혹이 된다. 현재 조선의 무림에서 기본 공력을 기르는 내단법에서 시작하여 권법을 익히고 창검의 수련에 이르는 명실공히 하나의 문파로서 존립하는 수련단체가 몇이나 되는가? 권법이 수승하면 병장술이 졸렬하고, 무기술이 훌륭하면 권법이 수준 이하이며, 내단법이 특출나면 무예적인 술기가 약한 경우가 허다하다. 하기사 기천의 대선배 중 한 분은 대중화 실패의 원인 중 하나로 기천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명확치 못하다는 점을 지적하기도 했다. 즉 해동검도 하면 검도 ,태권도 하면 발차기, 단월드 하면 단전호흡 식의 대표 음식(?)이 없다는 말이다. 일견 타당해 보이지만 공부가 다양한 소림사의 사업적 성공을 보면, 구매욕이 당기는 상품으로 내놓지 못하는 우리 탓이 크다.


Ⅲ. 맺는 글


근대화 성취의 민족적 자신감은 전통에 대한 긍정적인 접근을 가능하게 했다. 90년대 통일운동과 더불어 우리 것과 우리 것 찾기 운동은 대분출 했다. 기천도 대중화에 대한 자신감이 충천했다. “제비 몰러 나간다” 로 시작하여 “우리 것이 좋은 것이여”로 끝나는 모 광고는 민족적 자신감이 분출하던 그 시절을 대표하는 장면이다. 국제투기자본의 식민시대(IMF) 이후 정보화와 신자유주의의 범람 속에서 우리 사회는 오직 돈 만이 모든 가치의 지향점이 되었다. 자극적이고 소비적인 문화가 만연한 젊은 대중에게는 기천과 같은 전통무예는 호기심 이상으로 받아들여지기가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길은 두 갈래다. 하나는, 짐작하는 대로 활명(活命)의 길이다. 보보비운하며 일검파사하는 고수의 길은 멀고 험난하지만 웬 만한 질병은 이겨내는 면역력이 억센 건강한 몸에 대한 꿈은 상대적으로 만만해 보이기도 하지만 현실적 이며 직접적인 대중의 요구이기도 하다. 이 요구에 적극적으로 대답한 몇몇 지원은 생존했다. 문제는 기천인 모두가 공유하는 협회 차원의 프로그램에 의한 처방이 아니고, 지원장 한 사람의 각개약진 이라는 점이다. 신자유주의의 구조 속에서 한 개인의 분투는 칭송 받아 마땅하지만, 대국을 전환 하기에는 힘에 버겁다.


도심공원에 모여 태극권을 즐기는 중국인민의 모습이 부럽다며 우리는 그런 문화유산이 없다며 실망하는 말은 중국을 다녀온 사람들로부터 쉽게 들을 수 있다. 한국정부도 그게 좋아 보였던지, 새 천년 체조니 머니 해서 대학교수에게 연구개발비 주고, CD를 찍어 뿌린다, 방송을 한다, 호들갑을 떨지만 민족 정서와 유리된 어설픈 태권 품세와 방정맞게 안무한 탈춤사위로는 호응을 기대할 수 없는 일이다. 정부가 해내지 못한 일을 감히 기천이 해보면 어떨까? 능력 있는 안무가와 음악가가 붙는다면 가능하다고 생각 한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전통은 당대 사회 구성원의 요구에 충실히 복무할 때 그 긍정적 가치를 가지는 법이며, 전통성을 인정받게 되는 것이다.


남은 하나의 길은 공연예술의 길이다. 우리는 태권도와 우슈가 아크로바틱한 동작으로 결합되어 전 세계를 강타한 JUMP를 기억한다. 공연판에서 만난 많은 인사가 기천의 공연예술로의 성공을 점치며, 그 일을 감당 하고 싶다고 토로한다.


전국의 생활체육 광장에서 유려하면서 장중한 기천의 흐름이 군무로 시전되며, 수준 있는 기천의 기예가 펼쳐지는 가운데 기천의 철학이 강물처럼 흐르는 공연이 호응을 얻는다면, “약간의 인내심만 있다면 남녀노소 누구나 즐길 수 있는 전통무예” 라는 기천의 선전문구를 보며 실소 하는 일도 없을 것이고, 나를 보고 비웃던 못난 사람 더 이상 없을 테지…..

A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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