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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08.06 <시가 태어나는 자리>를 읽고

<시가 태어나는 자리>를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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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좋아하는 시간은 자정이 넘기 시작하는 순간이다. 시골에서는 그 시간이면 모든 것이 잠으로 빠져든다. 그 때 부터는 나와 시계의 초침만이 세상의 소음이 된다.

난 이 고요한 시간에 '시가 태어난 자리'를 손에 들었다.

책을 읽는 순간부터 언어의 아름다움에 빠져 뭉클거리는 가슴으로 읽어 내려갈 수 밖에 없었다. 시인의 눈을 통해서 만나는 내 일상을 아름답게 승화시킬 수 있는 공감(共感)을 음악과 함께 그림으로 보여주기에 감사하는 마음을 느낄 수 밖에 없다.

아! 젊음의 숨결이 나에게 전도된다. 감격으로, 눌린 용수철처럼 억눌린 내 마음은 뛰쳐 오른다.
일탈을 충동적으로 느낀다. (물론 내 생활반경에서의 일탈의 의미도 있지만, 앎에 의해서 내 주변의 것들이 새롭게 보이게 되기를 원한다는 뜻도 있다.)

내 일상에서 시가 사라진 것은 언제부터 인가?
시를 간간히 외우고 하였는데 언젠가 부터인지 외우지도 접하게 된지도 오래된 것이다. 이 책은 그런 나를 되돌아 보게 한다.

김소월의 진달래꽃, 김춘수의 꽃, 정극인의 가사 상춘곡 같은 것들을 좋아해서 혼자 있을 때 읊조렸던 기억이 난다. 특히나 상춘곡은 술마실 때 친구들에게 한마디 할 때 많이 이용한 기억이 난다.

'화풍이 건닷부려 녹수랄 건나오니 청향은 잔에 지고, 낙홍은 옷에 진다.'

'봄이 도라오니, 수풀에 우난새난 소리마다 교태로다. 물아일체어니 흥이애 다랄소냐'

봄이면 '화풍'이라고 했고, 가을이면 '청풍'이라고 했다. 봄에 계룡산이라도 올라갈 때면, '수풀에 우난새난~'을 한 번씩 내뱉곤 했다. 물론 문법이니 역사적 배경이니 하는 그런 것들은 모른다. 하지만 시는 그냥 마음에 끌리어 다가 왔던 것이다. 시를 찾아 나선적도 없는 것 같다. 교과서나 일상에서 우연히 접하고 그것이 마음에 와 닿으면 외우고 읊조렸던 것 같다.
시는 일상에 있는게 아닐까?
시인에게는 시가 일상에서 만들어 지면서 태어나고, 독자에게는 일상에 읊어지며서(개인의 의미로서) 태어나는 것이 아닐까?

지금 생각해 보니 시인은 짧은 글로 우리 마음에 우리가 보지 못했던, 보이지 않는 것들을 영상으로 보여주는 사람인 것 같다. '나는 단수가 아니라 복수다'란 말처럼, 시인은 자신 이외의 타인과 자연에 자신의 모습을 투영하고, 그 투영에 따른 피드백의 의미를 볼 수 있는 사람이지 않을까 한다. 즉, 시인은 의미없어 보였던 내 몸짓에 의미를 일깨워 주는 사람인 것이다.

요즘들어 나에게 '상실'이란 단어는 마음속에서 떠나지 않고 있다. 황동규 시인의 '조그만 사랑노래'에서도 난 '상실'이란 단어가 떠 오른다. 몇일전에 읽은 '실마릴리온'에서도 남은 것은 그 단어였다. 아직 이 단어의 실체적인 의미에 대해서 깊게 생각하지도, 제대로 정리되지도 않았다. 그러나 어렴풋이 느껴지는 것으로는 혹시 우리는 모두 상실을 추구(어쩌면 염려의 역설적인)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모든 것은 다시는 되돌릴 수 없는 상실이 있기에, 상실할 것이기에(우리는 인식하지 못하지만), 아름다움이 존재하는 것이 아닐까? 우리가 아끼고 더욱 아끼고 하는 것이 깨어져 상실되었을 때, 그것의 의미를 높이고 노래하는 것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씨앗은 떨어져 죽어야 다시 태어나는 것은 아닐까?
고향이 그립고 정다운 것은 떨어져 있거나 갈 수 없기 때문에 더욱 그런 감정이 고조되는 것은 아닐까?)

일상의 소소함에 있어서도 그것에 대한 사랑을 찾을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그 사랑이 시인과 시를 탄생하게하는 것은 아닐까?
사랑은 삶에 대한 정열(에 의한 깨달음)인가 보구나!
아~! 안일하고 나태한 내 모습이 보인다. 시인이 말한, 나로서는 당장 어찌할 수 없는 막막함이 나를 둘러싸고 있음을 느끼게 된다. 삶의 자체가 시가 되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는 부단한 노력과 정열이 필요하겠지!

또한 시는 일상의 묘사에만 있는 것이 아님을 배운다. 시인의 의지가 담겨있는 예언같은 함축성을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면에서 보면 시는 은밀한 전달 매개체가 아닐까 한다. 삶에 대한 정신적 동조가 맞는 사람들에게 전달하는 고매한 정보같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우리가 포유류로써 같은 공감대 형성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이 문화, 사회를 이룩하는 것이라고 본다. 그런 의미에서 시가 태어난 자리를 생각해 보기도 한다.

"아~! 무식이 恨 이로구나!"

어쨌든 나는,

이제 '황동규 시전집'에서 무엇을 보고 무엇을 느끼며 어떻게 변할지 궁금하다.
A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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